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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에 참석하지 않았는가? (보도 자료)

최고관리자 0 19 05.14 15:14

< 보도 자료>

배포처 : ()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우리는 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행사에 불참할 수밖에 없는가?

 

동학농민혁명의 진정한 주체는 동학농민혁명의 참여자와 그 후손들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행사는 두 가지 목적에 맞게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찾고 그 정신을 기려 선양하는 것이다.

 

둘째 그에 못지않은 가치가 또 있다. 참여자의 희생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은 보국안민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느라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일본과 친일 앞잡이들의 탄압으로 목숨의 보전에 급급하며 혹독한 세월을 살아가야 했다. 나라를 배신한 자들이 권세를 부릴 때 그들의 눈을 피하느라 온갖 고생으로 살아왔다. 이를테면 참여자의 희생이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되어 내려왔다. 그렇기에 후손을 예우하고 위로하는 것은 참여자를 예우하고 위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금년의 제126주년 기념식 행사는 당초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하기로 협의하였었다. 그러나 미증유의 코로나19의 역병으로 장소와 시간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행사개최 계획을 변경하면서도 행사의 주체인 유족회에 협조를 구하거나 행사 내용을 단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문체부와 기념재단은 일방적으로 행사의 진행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족회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문체부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처사에 대하여 우리 2만여 명의 유족회 회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분개함과 아울러 전 국민 앞에서 이를 규탄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위정자들의 매관매직과 탐관오리의 부정부패 만연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이름으로 봉건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며 18943월 시작하여 전주화약을 맺고 해산했다. 하지만 그해 621일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이 고종을 겁박하여 친일정권을 세우자 우리 땅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전국에서 300여만 명이 2차 봉기를 일으켰다. 동학농민혁명은 세계 3대 농민혁명 중의 하나인 대 사건이었다.

 

훈련된 일본군과 신식무기에 의해 30여만 명이 살상을 당하였고, 살아 남은 자와 그 후손들은 반역, 역적, 동비로 몰려 생명의 부지조차 어려워졌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 앞에서 참여 사실을 감추거나 족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바꾸는가 하면 낯모른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하와이나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12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난하고 배움이 적은 후손들은 조상들의 애국애족의 희생을 떳떳하게 밝히거나 주장할 힘을 갖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하고 있는 형편이다.

30여만 명의 사상자 중 2019년도까지 명예회복 등록을 한 참여자의 실태를 보면 총 3,664명이며 이중 유족이 있는 참여자는 518, 유족이 없는 참여자가 3,146명이다. 이것으로 봐도 자기 조상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내는 후손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애국애족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참여자의 후손들은 가난하고 못 배워서 126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겨우 유족회를 결성하고 조상들의 행적 찾기에 겨우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억울함을 알게 된 정부는 200435동학농민혁명참여자 등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공포하고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그 유족의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을 하도록 법령화 되었음에도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는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을 현재까지 형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2만여 명의 유족회원들의 원성이 아주 높아가고 있다.

 

또한 2019511일 동학농민혁명국가기념일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광화문광장에서 제125주년 국가기념일 행사를 처음 개최하면서 유족의 동원을 요청했었다. 그런데도 기념식 식순에 분향.헌화, 무장포고문 낭독, 오락행사 등 행사 내용 등에 있어서는 유족들의 의견이 묵살되었고 배제되는 등 유족들은 곁가지 취급을 받았으며 문체부와 기념재단의 이용도구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주객이 전도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은밀하게 공공연히 벌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의 주체인 유족회에서는 다음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행사에 불참을 하겠다고 통보를 한 바 있다.

첫째, 문체부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념재단의 운영, 인사, 사업, 예산 집행에 관하여 개선 보완 사항을 수차례 요청. 건의하였고 56일 까지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하였으나 현재까지 회신이 없다.

 

둘째, 126주년 행사 내용에 분향 헌화와 유족회 인사가 추모사 등을 할 수 있도록 식순에 반영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가기념일 행사에서는 정부의 기준에 의거 분향 헌화가 없다며 행사 내용에 반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충일, 제주4.3행사, 5.18행사에서는 유족회장의 역할과 분향 헌화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셋째, 동학농민혁명의 주체인 유족들에게 아무런 상의나 공식적인 행사 참석 요청도 없이 무례하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행사를 추진하는 담당자를 문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청와대와 국회 앞 등 유관기관 앞에서 연좌 집회를 하고 진정 등으로 청원하는 등 지속적인 투쟁을 해 나가겠다고 통보한 바 있다.

 

이렇듯 동학농민혁명의 주체들이 가난하고 못 배워 자신의 본분을 다 찾지 못 할지라도 법률이 정한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을 위임 맡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는 맡은 소임인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의 추진을 위해 소임을 다해야 옳다. 그런데도 유족등록 하나만으로 소임을 다한 것처럼 떠들어 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들의 바람은 형평성이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도 조선 침략을 목적으로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수십만 명의 희생이 있었고 1895228일 대둔산에서 일본군에 최후 항전을 치르다 장렬히 순국했다. 현재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와 동등한 예우를 주장한다.

 

만약 상기에서 언급한 세 가지 내용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유족회는 국가기념일 행사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후로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우리 유족들은 뜻을 한데 모아 올바른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의 추진,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희생된 선조들의 서훈 등 명예회복의 추진, 희생자 후손에 대한 국가유공자 후손예우 등을 청와대, 국회, 각 국가기관에 청원하는 등 모든 노력을 경주해 나가겠다.

 

2020. 05. 11

 

()동학농민혁명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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