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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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역사의 이해

본문

 5. 동학농민혁명이 이루려는 세상은 무엇인가요?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 ‘민주적인 나라를 위하여, ‘자주적인 국가를 위하여, ‘가치 있는 삶을 위하여

 

동학농민혁명은 18941년여의 시간 동안 진행된 농민들의 대항쟁이다. 일본군의 무력 진압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동학농민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농민들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첫째, 조선의 조세 수취제도인 삼정을 바로 잡힌 세상이다.

농민들이 결코 세금을 내지 않거나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원칙대로, 가진 땅과 수확에 따라 정확하게 세금을 걷어 달라는 것이었다. ‘정해진 세금 외에 더 거두지 말 것, 토지가 있어도 농사를 짓지 않아 수확이 없으면 세금도 내지 않게 할 것, 불필요한 제방이나 보를 쌓기 위해 아무 때나 농민들을 불러 일을 시키지 말 것, 군포를 예전만큼만 거둘 것등의 상식적이고 당연한 주장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세상을 꿈꾼 것이다.

 

둘째,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농민들은 도매상인들이 관청과 짜고 특정 물건을 독점해서 비싸게 파는 행위들을 하지 못하게 할 것, 생필품을 값싸게 팔아 조선의 상업을 죽게 만드는 외국상인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등을 요구했다. 돈을 많이 벌고자 욕심을 냈던 것이 아니라 조선 상인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만을 원했다.

 

셋째, 신분제가 없는 세상이다.

동학농민군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조선의 민중들에게 양반도 상놈도 없이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간절한 꿈이자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동학농민혁명을 근대 혁명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그 해 1894628일 정부는 갑오개혁을 통해 법적으로 모든 신분차별을 없앴다.

 

넷째, 탐관오리가 없는 세상이다.

농민들이 혁명의 깃발 아래 모인 첫 번째 이유는 탐관오리들이 각 고을에서 법과 관습을 어지럽히고 악랄하게 수탈하는 것에 맞서 싸우기 위한 것이었다.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낡은 국가 체제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했다.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한 이후 전라도 대부분의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했다. 각 지역의 집강소는 농민들 스스로가 각 지역의 질서를 세우고자 행정을 맡았던 농민 자치기구이다. 이런 식의 농민 자치는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별한 통치방식이었다. 물론 각 지역 마다 사정이 조금씩 달랐다. 고을 수령과 협력해서 자치를 실시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는 동학농민군이 실제 모든 행정을 맡아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경험들이 동학농민군 스스로에게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힘을 주었을 것이다.

 

다섯째, 자주적인 국가이다.

집강소 통치기간에 일어난 청·일 전쟁과 일본군이 일으킨 경복궁 침탈을 보며 동학농민군들은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제2차 삼례봉기의 동학농민군들은 일본의 국권침탈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의병의 성격으로 나섰다. 동학농민혁명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반외세의 정신이다. 외국의 간섭 없이 나라를 개혁하고 우리에게 맞는 자치제도를 찾아나가자는 동학농민군의 정신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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