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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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역사의 이해

본문

 4. 동학농민혁명은 어떻게 전개 되었나요?

 

1차봉기

탐관오리의 처벌과 봉건제도의 개혁을 요구


사발통문 거사 계획

189311월 전봉준 등 20명은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 가()에서 사발통문을 작성 하여, ‘군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할 것, 군수에게 아첨하여 인민을 수탈하는 관리를 엄벌할 것, 전주성을 점령하고 서울로 직향할 것등의 내용을 결의하였다.


고부

1894110, 전봉준이 이끄는 고부 농민들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과 학정에서 벗어나고자 말목장터에서 봉기하여 고부관아를 점령합니다. 농민군들은 무기고를 헐어 무장하고 수탈의 상징이었던 만석보를 무너뜨렸다.


무장 기포

1894320, 무장에 모인 동학농민군은 포고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내용은 외세를 멸하고 탐관오리를 비롯한 권귀를 없애자.’는 것으로, 동학농민군의 꿈과 이상을 함축했다고 볼 수 있다.


백산 

1894326,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다시 백산에 모입니다.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김개남 · 손화중을 총관령으로 하는 지휘체계 및 조직을 구성한 농민군은 격문과 4대 명의, 12개조 기율을 발표하여 군대로서의 조직과 체계를 갖추었다.

189447,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4,000여명은 황토현에서 전라감영군과 싸워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이 전투는 농민군이 거둔 최초의 승리이자 최대의 승리였다.


황용 전투

황룡전투는 1894423, 전라도 장성의 황룡에서 동학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황룡전투에서는 장태(닭과 병아리를 넣어 기르던 닭장)가 무기로 등장하였다.


전주성 점령

황토현전투와 황룡전투에서 승리한 동학농민군은 1894427, 엄청난 위세를 과시하며 전주성을 공략하였고, 무혈 입성하게 됩니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동시에 호남지역 정치 · 경제 · 군사의 중심지이기에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은 조선 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전주 화약

189458, 동학농민군은 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합니다. 전주화약은 농민군 총대장 전봉준과 초토사 홍계훈 사이에 맺은 협정으로, 그 내용에는 농민군의 전주성 철수, 농민군의 신변보장, 폐정개혁안 임금 상주(上奏, 임금에게 아룀)’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집강소 설치

189476, 전봉준은 전라감사 김학진과 집강소의 설치운영 등에 합의합니다.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전라도 내에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집강소는 농민자치가 이루어 진 곳으로, 농민이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 주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효시로도 평가받고 있다.



2차봉기


일본의 조선 침탈에 항의 하여 봉기


삼례봉기

18949월 초순, 일본군이 정권을 침탈한 후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전봉준 등 농민군은 전라도 삼례에 대도소를 설치하고 재봉기에 착수하였다. 이후 군기와 군수미 확보를 위해 삼례를 출발한 전봉준은 손병희가 이끄는 농민군과 합류하여 남북접 연합군을 구성하였다.


우금치 전투

1894119, 공주 우금치에서 농민군은 관군과 다시 한 번 전투를 벌였다. 수만의 농민군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관군 및 일본군의 연합에 맞서 싸웠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동학농민군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군이 사용했던 신식무기에 있었다. 일본군은 당시 신식무기인 영국산 스나이더 소총을 갖추고 있었지만, 같은 전투를 했던 농민군은 농기구 혹은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화승총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의 최후

1894122, 전봉준 장군이 순창 피노리에서 붙잡히고, 비슷한 시기에 손화중, 김개남 등 주요지도자들도 붙잡혔다. 1895330일에는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등의 주요 지도자들이 교수형을 당하여 최후를 맞이했다.


장흥석대들 전투

18941215, 이방언이 이끄는 장흥지역 농민군 수만 명이 장흥 석대들에서 일본군과 민보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였다.


보은북실 전투

18941218,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 농민군이 충청도 보은 북실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였다.


대둔산 전투

1895124, 대둔산에서 약 3개월간 지키고 있던 농민군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소년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후 일본군 토벌대 조선에서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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