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무장포고문, 백산창의문, 폐정개혁안
무장포고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김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군신과 부자는 가장 큰 인륜으로 꼽는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충직하며 아비가 자애롭고 아들이 효도를 한 뒤에야 국가를 이루어 끝없는 복록을 불러오게 된다.
지금 우리 임금은 어질고 효성스럽고 자애로우며 지혜롭고 총명하시다. 현량하고 정직한 신하가 있어서 잘 보좌해 다스린다면 예전 훌륭한 임금들의 교화와 치적의 날을 꼽아 기다려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신하가 된 자들은 나라에 보답하려는 생각을 아니하고 한갓 작록과 지위를 도둑질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를 일삼아 충성스런 선비의 간언을 요사스런 말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비도(匪徒)라 한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나라를 돕는 인재가 없고 바깥으로는 백성을 갈취하는 벼슬아치만이 득실거린다.
인민의 마음은 날로 더욱 비틀어져서 들어와서는 생업을 즐길 수 없고 나와서는 몸을 보존할 대책도 없도다. 학정은 날로 더해지고 원성은 줄을 이었다.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구분이 드디어 남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관자가 말하길 ‘사유(四維)[예의염치]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곧 멸망한다.’고 하였다.
바야흐로 지금의 형세는 예전보다 더욱 심하다. 위로는 공경대부(公卿大夫) 이하, 아래로는 방백수령(方伯守令)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거의 자기 몸을 살찌우고 집을 윤택하게 하는 계책만을 몰두하여 벼슬아치를 뽑는 문을 재물 모으는 길로 만들고 과거 보는 장소를 사고파는 장터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허다한 재물이나 뇌물이 국고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사사로운 창고를 채운다. 나라에는 부채가 쌓여 있는데도 갚으려는 생각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음탕과 안일로 나날을 지새워 두려움과 거리낌이 없어서 온 나라는 어육이 되고 만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진실로 수령들의 탐학 때문이다. 어찌 백성이 곤궁치 않으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보국안민의 계책은 염두에 두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을 화려하게 지어 제 살길에만 골몰하면서 녹위만을 도둑질하니 어찌 옳게 되겠는가? 우리 무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이나 임금의 토지를 갈아 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으면서 망해 가는 꼴을 좌시할 수 없어서 온 나라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고 억조창생이 의논을 모아 지금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을 생사의 맹세로 삼노라. 오늘의 광경이 비록 놀랄 일이겠으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각기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면서 함께 태평세월을 축수하고 모두 임금의 교화를 누리면 천만다행이겠노라.
백산창의문
우리가 의(義)를 들어 이에 이른 것은 그 본 뜻이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가운데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에게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 굴욕을 받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을 것이니,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폐정 개혁안
오지영의 폐정계혁안(동학사 초고본)
一 人命을濫殺한者는버힐事
一 貪官汚吏는祛根할事
一 橫暴한富豪輩를嚴懲할事
一 儒林과兩斑輩의巢窟을討滅할事
一 賤民等의軍案은불지를事
一 종文書는불지를事
一 白丁의머리에페낭이를벗기고갓을씨울事
一 無名雜稅等은革罷할事
一 公私債를勿倫하고過去의것은竝勿施할事
一 外賊과連絡하는者는버힐事
一 土地는平均分作으로할事
一 農軍의두레法은奬勵할事
전봉준의 폐정계혁안(鄭喬, 大韓季年史)
一 轉運司를 革罷하고 舊例에 의거하여 각 邑에서 上納케 할 것
二 均田御史를 革罷할 것
三 貪官汚吏를 懲戒하고 逐出할 것
四 各邑의 逋吏로 千金을 犯逋한 자는 그 몸을 죽이고 족속을 징계하지 말 것
五 春秋 두 번의 戶役錢은 舊例에 의거하여 每戶 당 一兩 씩 排定할 것
六 各項의 結錢과 收斂錢은 平均으로 分排하고 濫捧하지 말 것
七 各 浦口의 私貿米는 嚴禁할 것
八 各 邑의 守令은 該地方의 用山買庄을 嚴禁할 것
九 各國人의 商賈는 各港口에서 買賣하도록 하고 都城으로 들여서 設市하지 말고 各處에 나와 任意 行商하지 말도록 할 것
十 行褓商의 폐단을 革罷할 것
十一 各 邑吏를 分房할 때 請錢을 징수하지 말고 쓸 만한 사람을 택하여 임명할 것
十二 奸臣이 弄權하여 國事가 날로 잘못되고 있으니 賣官을 懲治할 것
十四 國太公이 國政에 干預하면 民心이 거의 바라는 것일 것
오지영의 동학사에는 12개의 폐정개혁안이 있고, 1894년 5월 전봉준이 전라감사 김학진에게 제시한 13개조 폐정개혁 요구안이 있다. 폐정개혁안은 동학농민혁명군의 지향을 알 수는 자료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제시된 이들의 정신에는 크게 생명권, 신분제 철폐를 위시한 천부인권 , 조세정의를 비롯한 경제권, 외세배격과 국기확립을 포함한 국가주권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1919.3.1.운동당시에 제시된 독립선언서에도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