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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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역사의 이해

본문

 1.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국내 정세

 

19세기 순조, 헌종, 철종 60년간에 걸쳐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정치의 기강이 문란해졌다. 결국 탐관오리를 양산하고 그들의 득세로 이어져 삼정의 문란이 초래되어 민심과 사회가 극심하게 동요했다.

삼정의 문란

삼정이란 전정(토지세)’, ‘군정(16-60세에 해당하는 성인남자들이 군대에 안 가는 대신 내는 세금)’, ‘환곡(춘궁기 때 관곡을 빌려주고 추수 때 갚도록 한 제도)’을 통칭하는 세금제도이다. 이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양반을 비롯한 지배층은 세금을 부담하지 않은 채 생산자인 농민층에게만 세금을 부과했으며 관리들이 갖가지의 이름을 붙여 임의로 세금을 징수하는 빌미로 작용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농민층은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으로 내몰렸다.


매관매직의 성행

흥선대원군에 이어 권력을 장악한 민씨 정권은 숱한 폐단을 낳았다. 관직을 수천 냥에서 수만 냥을 받아 팔고 관직을 산 관리는 재산의 축재를 위해 뇌물을 탐하고 수탈을 일삼는 등 가렴주구가 횡행했다. 결국 매관매직의 부담과 폐단은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민란의 발생

19세기의 농민들은 삶이 위협받자 다양한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862년에 일어난 임술민란이 대표적이다. 민란은 고종 대에 이르러서도 계속되었으며 1871년 영해민란 때에는 수령을 살해하고 조선왕조에 반기를 드는 병란적 성격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민란이나 병란은 이후에 대규모 농민봉기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주체세력의 등장

동학농민혁명이 19세기에 일어났던 여러 농민봉기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이유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동학이라는 사상과 조직이 전국적인 조직망을 형성한 것이며, 두 번째는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으로 대표되는 전라도 동학교단의 변혁 지향적인 인물들이 주체세력으로 등장하여, 농민들과 사회 변화 와 개혁에 대한 욕구를 공유하고 실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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